login

디자인소식

2013 대구경북디자인센터 기획전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135
작성일
2013.04.02 18:11:46
첨부파일
파일다운로드
2013 대구경북디자인센터 기획전

2013 대구경북디자인센터 기획전

Graphic 5 - 한국사회와 마주서다

 

■ 일 시 : 2013. 4. 1(월) ~ 4. 15(월)

 

■ 장 소 : 대구경북디자인센터 4층 전시장

 

■ 오 프 닝 : 2013. 4. 1(월) 18:00 

 

아직도 침묵은 미덕인가?

어째서 산은 삼각형인가 어째서 물은 삼각형으로 흐르지 않는가 어째서 여자 젖가슴은 두 개뿐이고 어미 개의 젖가슴은 여덟 개인가 언제부터 젖가슴은 무덤을 닮았는가 어떻게 한 나무의 꽃들은 같은 색, 같은 무늬를 가졌는가 어째서 달팽이는 딱딱한 껍질 속에서 소리 지르지 않고 귤껍질은 주황색으로 빛나며 풀이 죽는가 귤껍질의 슬픔은 어디서 오는가

어째서 병신들은 바로 걷지 못하고 전봇대는 완강히 버티고 서 있는가 왜 해가 떠도 밤인가 매일 밤 물오리는 어디에서 자는가 무슨 수를 써서 조개는 멋진 껍질을 만드는가 왜 청년들은 月經을 하지 않는가 어째서 동네 깡패들은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가 왜 장님은 앞을 못 보고 소방서에서는 불이 나지 않는가 불에 타 죽어가는 새들은 무슨 말을 하는가

왜 술 먹은 사람은 헛소리를 하고 술 안 먹은 사람도 헛소리를 하는가 매일 밤 돌사자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언제부터 風向計는 우두커니 땅만 내려다보는가 어째서 귀여운 아이들의 볼그레한 뺨은 썩었는가 (후략)

이상의 긴 인용은 1986년에 발표된 이성복의 시 <신기하다, 신기해, 햇빛 찬연한 밤마다>의 일부이다. 폭력 앞에 침묵해야 했던 1980년대. 그 참혹의 시대를 향한 시인의 숨죽인 울부짖음이 거듭되는 물음 속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위의 글이 장황하다면 오늘 우리를 향한 명쾌한 진단 몇 가지를 더 보자.

일찍이 지방의 한 대학교수는 ‘한국인은 대체로 착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부패했다’고 일갈하였고, 도올 김용옥 교수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천민자본’과 ‘무기탄無忌憚의 정치’로 달려온 한마디로 ‘재앙의 사회’라 규정하고 있다. 한편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한국사회를 진영 논리에 빠진 ‘이분법 사회’라 진단하고, ‘오적五賊’의 예봉이 꺾인 시인 김지하는 ‘현대는 여성과 어린이와 쓸쓸한 대중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 모두 간결한 표현들이나 그 무거운 함의는 우리의 평정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모든 것이 우리의 의식 안에 있다.

위의 예시들이 진부하다면 최근 명지대 강규형 교수가 한 발언―새삼스러운 사실은 아니지만―을 더 보기로 하자. 그는 ‘서구사회에서 수백 년에 걸쳐 일어난 변화를 우리는 불과 20~30년 만에 성취하였으나,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승자와 패자가 확연하게 갈리는 사회’가 되었으며 ‘세대 갈등, 지역 갈등, 계층 갈등, 가치관 갈등이라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왜곡된 교육구조와 증오로 넘쳐나는 정보기술 환경’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하였고 ‘고학력자들의 사회에 대한 불만 고조와 국가 정체성의 실종이 사회 통합을 가로막고 있다’며 한국사회를 비판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말과 이미지로 넘쳐나지만 이러한 정보의 풍요가 오히려 사회 곳곳을 충분히 돌아보지 못하는 관심의 빈곤을 야기하고 있다. 물론 모든 시대는 화제와 문제를 동반하고 하이퍼리얼리티에서 시뮬라크르는 진짜를 전복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쉽사리 미혹당하여 극단으로 치닫거나 문제를 망각하고 은폐함으로써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우리는 지난 20세기를 통해 ‘우리의 가치’를 철저하게 버렸고, 자기전시와 고백의 포화상태 안에서 이 시대 모든 것의 ‘마땅함’을 잊은 지 오래다. 다시 말해 사유 속에서 얻어진 균형을 잃은 채, 소란함과 경박함만으로 바스락거리는 삶(미학)을 살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그저 ‘떠다니는 기표’를 바라보면서.

이같이 장황하게 한국사회에 관한 평가와 진단을 살피는 일은 이번 전시의 주제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야말로 주관적 직관을 넘어설 수 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규형 교수의 냉정한 평가는 우리가 작업 방향을 설정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대체 언제까지 역사의 무대 ‘뒤에’ 엉거주춤 서 있을 것인가? 더 이상의 수수방관은 비겁하다.

미학보다 윤리

_모든 시작은 늦지 않다

척후병에게는 큰 그림이 없다 하였는가? 유감이다. 공명과 교감의 크기를 위해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다시 확인하자.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사회에는 난마처럼 얽힌 복잡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분단, 저출산, 고령화, 만성적 지역주의, 학교폭력 외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수많은 문제들. 나라 밖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후쿠시마 원전사고, 튀니지의 재스민혁명, 핵폭탄의 위협, 전세계적 경기침체 등이 진을 치고 있다. 이같은 간난의 시대에 우리의 조촐한 우환의식(시각적 발언)은 유의미한 출발이 될 것이다. 이번 기획전은 하나의 특별한 주제를 앞세우지 않았으며, 이는 단일 주제의 극대화보다는 다섯 작가의 각기 다른 시각과 시선의 자유로움을 최우선으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아니, 노선을 명확히 압축하기에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모순과 부조리가 너무나 방대하였다. 주체가 관점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관점이 주체를 형성한다.

우리의 거침없는 신앙은 ‘이미지의 순수한 힘(畵意能達萬言)’뿐이고 그것이 의미하는바 타자를 위한 ‘위대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겸손하자. 우리는 이미지의 큰 바다에 조각배 하나를 띄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탄생하고 존재하고 소멸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점점 더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깊고 높이 멀리 나아가자. 과연 우리는 이 행성을 쇄신할 수 있을 것인가?

깨달음은 찰나에서 온다. 이념과 좌표 그리고 미학은 불변이 아님으로.

윗글의 모든 내용은 인용과 차용의 교직이다.

이관형(광주대학교 시각영상디자인학과 교수)

 

- 작품이미지 -

박금준

 

변추석

 

선병일

 

이관형

 

이봉섭